씨캠 전격취재 : 내부자들④ <고래>

씨캠 전격취재 : 내부자들④ <고래>

작성자
관리자
게시일

2023. 9. 22.

분류
사람
씨캠 전격취재 : 내부자들④ <고래>

이번에 만나볼 주인공은 밀양소통협력센터 시민협력팀 팀장 🐳고래(송하진)님입니다. 고래란 닉네임은 어릴 적 바다 마을에서 살았기에 고래를 동경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고래는 서로 먼 바다로 떨어져 있어도(태평양과 대서양처럼)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라 정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소통협력센터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고래님은 주말마다 서울 서대문공동체라디오에서 고래처럼 저 멀리 누군가를 향해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어떠세요? 이쯤 되면 고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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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소통협력센터에서 어떤 일을 맡고 계시는지요?

🐳 시민협력팀에서 일하고 있고요. 주로 시민과 함께 하는 현장 중심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참여자들이 단순히 관객이나 소비자처럼 차려진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것보다 시민 스스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참여자끼리 활동 범위 안에서 새로운 연결이나 관계가 형성되거든요.

고래님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요?

🐳 글쎄요. 어떻게 보면 그동안 해왔던 일은 모두 비슷한 범주 안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막상 제 정체성을 정의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누군가는 저를 ‘사회혁신가’라 부르기도 했고, 아니면 시민 활동을 기획해왔기 때문에 ‘기획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아니면 한때 소셜디자인이란 말이 유행이었을 때는 ‘소셜디자이너’이기도 했습니다.

소셜디자이너가 고래를 표현한 가장 적절한 말인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저는 무엇이든 딱 이게 나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설정한 후, 적극적으로 사용해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항상 경계에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 가서 제가 하는 일이나 활동 내용을 설명할 때는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어요.

하긴 소설가나 영화감독 또는 작곡가처럼 한 단어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어떤 태도로 일에 임하고 있느냐 겠죠. 그런데 고래님은 언제부터 이 세계에 몸을 담으셨나요?

🐳 제가 본격적으로 이쪽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생각한 건 우연한 계기로 2011년 11월 희망제작소에 들어가면서부터입니다. 물론 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완전한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여하튼 희망제작소가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들어갔어요.

원래는 제가 애드보커시 활동가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러다 군대를 학사장교(공군)로 복무했는데 제대 후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영국 브루더호프 공동체 마을을 비롯해 스페인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공동체 활동 단체를 둘러볼 참으로 한 3개월 정도 지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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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배낭여행 성격과 좀 달랐던 것 같은데 혼자서 다녀왔어요?

🐳 아뇨. 함께 제대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현타가 오더군요. 제대도 했고, 졸업도 했는데 직업이 없으니 백수였던 거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희망제작소에서 일하던 선배가 단기 인력을 찾고 있다며 연락이 왔어요. 3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일한 후 그냥 눌러앉게 됐습니다. (웃음) 그때부터 이쪽 활동을 하게 된 거죠.

우연의 모습으로 온 필연이었던 것 같네요. 3개월 단기계약이 끝났다고 해서 누구나 정직원이 될 순 없었을 텐데 그랬단 얘기는 일을 잘 해냈다는 거잖아요. 대기업 같은 곳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그곳에서 계속 일해보기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뭔가 사회에 이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문과 적성인데도 유아 시절 아인슈타인 전기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심지어 과학도 잘 못했는데도 말이죠. 아무튼 누가 내게 의무를 던져준 것도 아닌데도 이러는 걸 보면, 스스로 어떤 사명 같은 걸 느끼며 그런 일에 반응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 네. 분명히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가난한 편이었고, 힘든 상황도 많았는데 어머니는 항상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많이 도우셨어요. 요즘처럼 명절이 되면 함께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를 챙기시곤 했죠. 그런 어머니가 존경스러웠어요. 또 하나 있다면 대학 시절 선교단체 활동 경험입니다. 제가 속했던 단체는 선교라는 영적 구원도 이야기 했지만 사회적 활동에도 힘을 쏟았어요. 사실 예수의 삶도 육신을 입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삶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었잖아요. 그런 소명에 이끌렸던 경험도 내 자아 형성에 영향을 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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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화학과 철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말씀을 들어보니 선교단체 활동도 열심히 하신 듯한데 꽤 알차게 보내신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또 다른 강렬한 경험은 없었나요?

🐳 아까 말씀드렸지만 문과 체질이라 화학이 저랑 맞질 않았어요. 그래서 복수전공으로 철학을 택했던 건데 학부 수준이라 뭐라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2004년에 네팔에 있는 ‘희망의언덕’이라는 NGO 단체에 5개월 정도 합류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그 단체는 노동에 동원되는 네팔 어린이의 인권과 교육권 찾기에 힘을 쏟았었죠. 그때 카트만두에서 지냈었는데 네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어요. 소요 사태가 있었고 계엄 상황이었지만 위험을 느끼진 못했어요. 오히려 평화적으로 민주화 시위가 이뤄지고 왕정이 무너지는 걸 목도한 경험이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만 해도 세계 곳곳의 분쟁 현장을 누비며 활동가로 사는 삶을 그렸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는 머리만 컸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런 경험들이 현재의 저를 형성하는 토대가 됐던 건 분명합니다.

희망제작소 시절은 어떠셨어요?

🐳 저는 재밌는 일을 좋아하고 남들이 해오던 방식보다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 쪽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재밌는 사람이란 얘기는 아니고, 일할 때는 좀 특별한 걸 찾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희망제작소 활동으로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그렇군요. 자, 그럼 밀양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밀양소통협력센터에 처음 왔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 일반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제 앞에 커다란 백지가 펼쳐진 느낌이었어요. 여기서 그리는 선하나 여기서 긋는 한 획이 우리의 그림이 될 수 있다는 느낌 같은 거였어요. 그런 점이 재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빈 곳이 많아 다양하게 일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점은 좋은데 지금은 할 일이 참 많은 곳이구나, 많아도 너무 많구나, 하고 있습니다. (웃음)

예전에도 지역에서 일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 잠시 제주도에서도 몇 개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 지금처럼 밀양에서 본격적으로 거처를 구하고 일상 대부분을 지역에서 지내기는 처음입니다.

밀양소통협력센터 스탭들과 일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희망제작소랑은 또 달랐을 것 같은데.

🐳 빌리(센터장)와 토리(본부장)가 만들어 가는 이곳 소통협력센터와 팀원들이 참 단단하고 좋다고 느껴졌어요. 저는 지금껏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일 해왔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밀양은 특히 과거 희망제작소에서 재밌게 일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게 만들어요. 그래서 더욱 즐겁게 일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일 측면 말고도 삶으로도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게 지역살이로 낯설 수 있는 제 일상의 안정을 가져오게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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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고래님을 지켜보면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많은 일을 쳐내고 계신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 아직은 사업 초기라 대부분 진행 중인 사업이 많은데 그래도 몇 개 꼽자면 ‘로컬의 발견’이라는 사업입니다. 밀양 외 지역 사람을 불러들이는 한편, 밀양 안에 있는 사람은 밀양 밖과 연결되게끔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또 양쪽이 다시 맞물려 연결 지점을 확산할 수 있을 듯해서 기대가 큽니다. 제가 원래는 I 인데 일 할 때는 E 모드로 전환이 됩니다. 사람을 만날 때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저도 새로운 사람과 연결되는 게 좋고요.

또 하나는 ‘로컬은 대학’이란 사업입니다. 밀양은 대학이 없는(밀양대학교가 부산대로 병합되어 캠퍼스 이전함) 도시인데 그래서인지 밀양을 하나의 캠퍼스라고 상상하고 기획하는 게 재밌었어요. 지역에 대학이 없다는 건 그곳 청년은 숙명적으로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지역에 대학이 없다고 지역에 미래까지 없을까, 하고 자문해 봤어요. 그러다 뭔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보기로 한 거죠. 어떤 학문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나 직업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 자체가 배움과 성장의 공간이 되어 이곳 사람도 만족하고 또 외부인도 끌어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면서 ‘로컬은 대학’ 프로젝트 컨셉을 다듬었습니다. 지금 밀양에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밀양과 서울을 오가는 이른바 더블로컬 생활을 하시는데요. 서울은 얼마나 자주 가세요?

🐳 거의 매주 가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는 100명~150명 정도 규모의 마을공동체 일원으로 살고 있어요. 이 중에서 6가구가 모여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공동체주택을 지었어요. 젊은 신혼부부 세대 중심으로 이뤄진 공동주택인데 마을 차원에서도 커뮤니티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입주자끼리 MT도 가고, 파티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공동체주택, 그 어려운 걸 해내셨군요!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듣기로는 라디오 진행도 하신다고.

🐳 네. ‘서대문공동체라디오’에서 일주일에 한번 <송하진의 들리는 연구, 보이는 세상>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맡고 있습니다. 진행뿐 아니라 PD, 구성작가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방송 내용은 소셜 연구자 그룹에서 어떤 사회 이슈를 갖고 연구를 했는지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주로 다루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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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밀양에서 이뤄지는 여타 행사 진행을 매끄럽게 잘 한다고 느꼈었는데 역시 킥이 있었네요. 듣고 보니 방송이 궁금한데요 방송일은 언제인가요?

🐳 방송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서 9시까지 나가는데 라디오 어플로 지난 방송 다시 듣기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이든 밀양이든 어느 곳이나 자신과 연결된 커뮤니티가 있고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고래님에게는 좋은 커뮤니티가 있어 부럽기도 하고 보기가 좋습니다.

🐳 여전히 양가적 마음이 들긴 해요. 사실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해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공동체 내부에만 집중하다 보면 뭔가 답답해 외부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견고한 공동체에서 우연히 연결된 느슨한 관계망으로의 확산이랄까요.

고래님이랑 얘기하다 보니 점점 고래님 세계로 빠져들게 되네요. 하지만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니 오늘은 이만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 또 한번 고래님 이야기를 소개하는 기회를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 고래의 밀양 맛집 베스트 3를 꼽는다면?

🐳 (웃음) 저는 특별히 어떤 게 맛있다기보다는 반찬이 다양하고 푸짐한 집을 좋아하는데요. 그런 집이 동네에 있더라고요. 가게 이름은 ‘제주생고기촌 숯불갈비’입니다. 고깃집이긴 한데 점심에는 밥 손님이 많아 점심 메뉴가 따로 있어요. 반찬 종류도 많고 다 맛있습니다. 그리고 ‘밀양밀면맛집’과 밀양소통협력센터 동료들도 즐겨 찾는 ‘인삼돼지국밥’입니다.

네. ‘인삼돼지국밥’ 또 나왔네요. 갑자기 국밥이 땡기네요. (웃음) 넵.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밀양에서 추진하는 시민협력 사업이 잘 되길 바랍니다. 저도 많이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nterviewed by ☕소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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