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30.
2024년 첫 번째 내부자 인터뷰의 주인공은 쌤입니다. 현재 밀양소통협력센터 공간기획팀 팀장을 맡고 있는데요. 최근에 축농증 수술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수술이 잘 되어 요즘은 뻥뚫린 시원한 세상을 만끽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편두통이 사라졌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쌤은 소멸 위기의 도시는 잘 소멸함으로써 지속할 수 있다는 역설의 생존법을 설파하는 분이기도 한데요. 성장과 개발로 자라난 도시의 한계를 인정하고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도시가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 같습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를 돕는 쌤처럼 살고 싶다는 쌤을 지금 만나보겠습니다!
☕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 안녕하세요. 밀양소통협력센터 공간기획팀에서 일하는 정영민입니다. 센터에서는 쌤으로 통합니다.
☕ ‘쌤’은 원래부터 사용하던 별칭이었나요?
🤗 센터에서는 별칭이 필요해서 정했어요. 제가 밀양에 오기 전 일하던 곳에서 시민 활동가분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를 영민쌤~ 하고 불러주셨어요. 익숙한 호칭이랑 쌤으로 정했는데, 선생님이나 존칭으로서 ‘쌤’이라기 보다는 어떤 저만의 다짐이 담긴 말이에요.
☕ 어떤 다짐일까요?
🤗 〈반지의 제왕〉에 쌤이란 캐릭터가 있는데요. 프로도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보좌하면서 굳건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친구예요. 절대로 나서지 않으면서요. 제가 공간기획팀 팀장을 맡게 되면서 쌤처럼 일해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그런 마음가짐을 담아 정했습니다.
☕ 저도 나름 호빗인데 보면서 그런 생각을 전혀 못 했네요. (웃음) 근데 방금 활동가분과 함께 일하셨다고 했는데 시민단체에 계셨던 건가요?
🤗 시민단체는 아니고 부산 영도 도시재생센터에서 일했어요. 지역 내 활동가분들이 다진 발판, 어떻게 보면 유산인데 그걸 바탕으로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었어요.
☕ 사회에 나와서 첫 직장이 도시재생센터였나요?
🤗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를 마치고 석사 과정에 들어갔었는데요. 그때 랩에서 부산 영도 도시재생 사업 관련해 활성화 계획이나 기본 계획 방안을 연구 중이었는데 저도 참여해서 서포트 했었어요. 그게 인연이 되어 석사를 마치고 아예 영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맡은 설계사무소 부설연구소로 들어가 실행계획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그 실행계획을 바탕으로 영도의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서 실행할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바로 지원했죠.
☕ 쌤은 인천에서 나고 자란 걸로 아는데 영도에 대한 애정이 무척 느껴지네요. 영도의 어떤 점이 그렇게 끌렸나요?
🤗 영도에 특별한 매력에 끌렸다기보다는 영도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방법론이 매력적이었고, 기회가 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했을 뿐이에요. 다만 꽤 오랜 시간 함께했던 교수님이나 설계사무소의 이사님, 영도구의 행정 등 이분들과 함께한다면 일을 잘 해낼 수 있겠다 싶은 신뢰가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영도에서 살고 있는 걸 보면 제가 영도를 좋아하긴 하나 봅니다. (웃음)
☕ 그러다 지금은 밀양소통협력센터 공간기획팀 팀장을 맡고 계신데요. 어떤 계기로 밀양에 합류하시게 됐어요?
🤗 영도에서 활동할 때 빌리(센터장)를 만난 적이 있었어요. 당시 빌리가 부산 초량의 이바구캠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이후로 연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빌리가 밀양에서 재미있는 일을 함께하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어요. 당시 많은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 밀양은 처음이신가요?
🤗 예전에 영남루가 궁금해서 한번 와본 적이 있었고, 삼문동 도시재생 관련해서 잠깐 일했던 경험이 있었어요.
☕ 그 정도면 밀양이랑 인연이 깊은 편이시네요. 그리고 부부가 각자 인구소멸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보면 부부가 함께 비슷한 부문에서 일하기에 서로 의지가 되기도 하겠지만, 반면에 힘든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신지요?
🤗 사실 먹고 사는 문제나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늘 있어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밀양소통협력센터의 연속성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어요. 쉽게 단정하기 어렵고, 이야기 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센터가 지역의 변화를 이끌 큰 임팩트를 주고 자연스럽게 소멸하기를 바라지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만 하는 센터로 연명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이것이 잘 소멸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우리 부부는 아직 젊은 편이라서 지금은 부담 갖지 말고 일을 해보자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 이번에 밀양소통협력센터 애뉴얼리포트 작업을 하면서 센터 스탭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요. 기억하시겠지만 질문 중에 지난 1년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지 묻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그때 쌤의 답변을 보면 구 밀양대 옥상에 틀밭을 가꿨던 ‘마이그린멤버십’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더욱 좋았던 과업이라고 쓰여있더군요. 옥상틀밭 프로젝트가 어떻게 나를 돌아보는 일로 연결됐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그 답변은 센터에서 지난 1년을 보낸 저의 소회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그동안 설계사무소와 용역사 그리고 센터 등에서 일하다가 다시 센터로 돌아왔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의 일하기 방식이 어느새 루틴해졌더라고요. 각 조직의 성격이 다른 만큼 조직에 맞춰 제가 바뀌어야 하는데도 저는 하나도 바뀐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생전 처음 해보는 옥상틀밭 작업이 그걸 깨닫게 해줬어요.
☕ 더웠던 지난여름, 출퇴근 길에 작물 관리하시느라 애쓰시는 것 봤어요. 뭔가 리추얼한 느낌까지 받았었는데 그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또 하나 궁금했던 게 기억에 남는 협업파트너가 있었냐는 질문에 유일하게 시청이라고 답하셨어요. 그동안 행정과 함께 일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밀양시는 뭐가 달랐나요?
🤗 제가 생각하는 직급별로 일 잘하는 기준 같은 게 있어요. 이를테면 사원은 조금 영리해야 되고, 팀장은 일머리가 있으면서 사람이 좋아야 하고, 리더는 존경받을 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밀양시 문화예술과가 바로 그런 느낌이었어요. 특히 과장님은 저희가 해야 할 역할과 업무의 경계 그러니까 이거는 해도 되고, 이거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식으로 정리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유능한 행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현재 쌤은 한국의 청년 당사자이기도 한데요. 인구감소 위기 국면에서 지방 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으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지 궁금해하신 거로 아는데요. 이런 궁금증은 건축을 공부하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고민이었는지 아니면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느꼈던 궁금증이었는지요?
🤗 둘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문제 관련해서 사실 학교에서 공부한 이론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건축에서 도시로 사고를 확장하고 산업 구조를 비롯한 여러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것을 경험하면서 제가 실제로 경남 일대의 농어촌 지역을 돌아다녀 보니 진짜로 소멸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소멸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 그러면 쌤은 기본적으로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막을 수 없으니 잘 소멸하는 법 또는 연착륙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역에서 성공한 로컬크리에이터가 언론에 부각되면서 지역이 새로운 기회로 부상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 흐름 안에서 볼 때 과연 지역 활성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 건지 어떻게 보시나요?
🤗 저는 센터의 역할이 과학으로 따지면 당장 효과가 있는 응용과학을 밀어준다기 보다는 기초과학을 지원하는 일이라고 봐요. 하지만 민간 영역인 소상인을 발굴하고 성공 사례를 띄어준다는 건 역시나 지역이 그만큼 절박하고 갈증이 심하다는 방증일 수 있죠. 따라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따질 때는 조심스러워집니다. 다만, 저는 밀양에서 그나마 해볼 수 있는 건 밀양 원도심의 재도시화라고 생각해요. 밀양 원도심은 기능이 상실돼 있는데 센터가 어느 정도 기초 발판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어요.
☕ 밀양은 현재 소통협력공간 조성사업뿐 아니라 문화도시 사업, 도시재생사업과 상권활성화까지 말하자면 웬만한 지역 활성화 정책 사업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아직까지 밀양은 청년들에게 발견이 되지 않은 듯해요. 부산이나 창원, 대구 같은 대도시 사이에 인접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청년들에게 밀양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야 할 것 같은데요.
🤗 저는 인구 10만이란 기준을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생활 인프라를 결정하는 인구수 같아요. 밀양은 딱히 인프라가 부족한 도시는 분명 아니거든요. 그렇다 보니 거주지로서 밀양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문제는 역시 일자리 문제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밀양소통협력센터가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업무를 하는 곳은 아니죠. 다만 밀양에 나노산단이 들어서 젊은 세대가 대거 늘어난다면 그들에게 밀양을 느낄 수 있는, 다시 말해 취향의 커뮤니티를 제공해 밀양을 일하러 온 도시가 아니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로서 느끼게끔 해줄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평일 저녁에도, 놀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한 도시였으면 좋겠어요.
☕ 밀양소통협력센터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부터 지속해 온 사업이 더욱 심도있게 드러날 텐데 올해 공간기획팀은 어떤 역할을 강화할 예정이신가요?
🤗 공간기획팀은 소통협력센터의 양극단을 다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소통협력센터의 시민협력팀이 교육과 성장이라는 틀을 다진다고 하면 공간기획팀은 어떻게 하면 그 교육 틀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것인지를 고민하는 거죠. 그리고 교육을 통해 성장이 이루어졌을 때 그 성장을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로 변화를 주기 위해서 어떤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지도 저희 공간기획팀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 밀양은 응집력이 뛰어난 곳입니다. 밀양 아리랑 축제나 오딧세이 축제를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거든요. 다만 다양성이 부족한 편입니다. 취향의 커뮤니티를 발굴하고 다양성을 보충하는 일을 센터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소통협력센터가 사라지더라도 커뮤니티는 지속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소멸의 연착륙 첫걸음입니다.
☕ 자, 이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마지막 질문입니다. 자신만의 밀양 맛집 베스트 3는?
🤗 (웃음) 제육볶음이 예술인 부북면 ‘금촌’과 교동의 ‘교동오리’ 그리고 센터학식이라 할 수 있는 내이동 ‘노노하나’를 꼽겠습니다. 아 그리고 밥집도 중요하지만 밀양 오시면 삼문동 강변 산책 강추합니다. 소도시로서의 밀양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에요. 밀양 청년 100인의 인터뷰에서 어느 청년분이 말했듯이 인류애를 회복시키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 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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