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2.
영화 ‘밀양’의 그 밀양?
내가 밀양에서 일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영화 '밀양'의 그 밀양?"이라고 되묻는다. 그만큼 밀양 하면 떠오르는 지역 특징이 없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밀양소통협력센터의 할 일이 많다고 볼 수도 있다.
밀양소통협력센터는 행안부와 경남도, 밀양시가 재원을 마련해 밀양의 사람을 연결하고 자원을 발굴해 누구에게나 ‘오고 싶은 밀양, 살고 싶은 밀양’을 만드는 걸 골자로 한다. 다시 말해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하는 밀양을 경남권 로컬허브로 자리매김해 사람과 자원이 오고 가는 활력 있는 도시로 재탄생 시키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밀양 안에서 지역 연결거점으로 활용할 공간 구축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폐교된 밀양대학교 3호관 건물의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사실 난 영화 '밀양'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창동 감독 영화는 '초록물고기'부터 '박하사탕' '오아시스' '시', '버닝'까지 볼 정도로 좋아하는 편인데 왜 '밀양'만 빼먹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연유로 사람들이 "영화 밀양의 그 밀양?"이라고 물을 때 딱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 봤다고 말하면 그것도 안 봤으면서 밀양에 왔냐고 핀잔을 듣지 않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으니까(물론 그런 사람은 아직 못 만났다).
그러다 드디어 영화 밀양을 만났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나 영화적 성취를 떠나 십수 년 전 밀양 시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영화 도입부에서 신애(전도연)가 밀양은 어떤 곳이냐고 묻는 말에 "경기가 엉망이고 뭐 부산이랑 가까워서 말씨도 부산 말씨고, 인구는 뭐 마이 줄었고” 하는 종찬(송강호)의 대답이 귀에 쏙 박혔다. 그 당시에 봤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텐데 “인구가 마이 줄었고”하는 대사에서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실 웃으면 안 되는 일이지만, 밀양의 쇠락 조짐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이다(혼잣말로 “그래서 소통협력센터가 생겼지롱!”하고 답할 뻔).
그런데 밀양소통협력센터가 있다고 사업 기간 내 밀양의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거나 도시가 다시 성장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본다. 일본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성장이 없다고 도시의 미래가 없는 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우치다 선생은 그 가능성을 로컬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측면에 볼 때 인구감소가 반드시 위기인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삶의 전환을 이루려는 태도와 서로가 연결돼 있다는 자각이 아닐까 싶다. 밀양소통협력센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민주도로 지역활성화 및 로컬브랜딩의 지속가능성을 찾도록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영화 ‘밀양’ 덕분에 밀양의 햇살이 유명해졌다. 아시다시피 밀양의 밀(密)은 ‘빽빽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비밀스럽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영화 밀양의 영어 제목이 ‘Secret Sunshine’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사실 밀양의 밀은 비밀도 빽빽함도 아니다. 밀은 물의 고어였고, 한자로 마을 이름을 표기하기 시작하면서 변용되고 덧붙여진 의미이다(그러나 밀양은 실제로 볕이 강하긴 하다. 참고로 지역명에서 陽이 붙으면 대체로 볕이 좋다). 밀양은 밀양강과 낙동강 지류가 만나는 곳이라 물이 풍부하다. 아주 오래전에는 습지였다고 한다. 그만큼 햇볕보다는 물의 속성이 더 컸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습지에서 분지로 변했다. 지역 지리적 특성이 물(水)에서 불(火)로 변했다는 게 재미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생길 수 있는 변화란 말인가. 이처럼 밀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혀 반대의 기운이 자리를 바꾼 지역이다. 다시 말해 밀양은 변신이 가능한 도시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비록 영화 밀양을 찍을 때보다도 인구가 더 줄어 지금은 10만 명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적어도 인구가 늘진 않더라도 밀양을 찾아오고 밀양과 연결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은 틀림없다. 왜? 밀양소통협력센터가 있잖아.
written by ☕소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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