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캠 전격취재 : 내부자들⑤ <앤>

씨캠 전격취재 : 내부자들⑤ <앤>

작성자
관리자
게시일

2023. 10. 24.

분류
사람
씨캠 전격취재 : 내부자들⑤ <앤>

밀양소통협력센터를 꾸리면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웠던 일은 아마도 사람을 모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역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지역에서 그것도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에 도전하려는 사람을 찾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소통협력센터의 재무회계 관리를 맡아줄 사람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입니다. 더구나 밀양 토박이이자 밀양대 출신이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가! 바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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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김미정입니다. 현재 밀양소통협력센터 소통지원팀에서 일하고 있고 이곳에서는 ‘’으로 불립니다.

<빨간머리 앤>의 앤인가요?

🏃‍♀️ (웃음) 어떻게 아셨어요? 이곳에서는 호칭을 닉네임으로 한다고 해서 뭐로 할까 고민하다 ‘앤’이 떠올랐어요. 제 딸아이가 <빨간머리 앤>을 무척 좋아해서 함께 자주 봤었거든요. 저도 빨간머리 앤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닉네임으로 부르는 조직은 처음이라 놀랍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밀양소통협력센터 내부에 밀양 사람이 귀한 편인데요. 앤의 합류가 결정된 후 스탭 모두가 환호했습니다. 그동안 밀양에서만 살아오셨나요?

🏃‍♀️ 네. 그런데 태어난 곳은 부산입니다. 아버지는 밀양, 어머니는 부산 사람인데 제가 태어나고 밀양으로 이사했다고 들었어요. 바로 이곳 내이동과 부북면에서 유아기와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현재는 삼문동에서 살고 있으니 찐 밀양 사람 맞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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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대학교 시절 사진을 보고 있는 앤

더구나 지금까지 한 번도 밀양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들었어요.

🏃‍♀️ 초중고 심지어 대학도 지금은 없어진 밀양대를 나왔어요. 직장생활도 줄곧 밀양에서 했습니다.

정말 귀한 분이십니다. 밀양대 캠퍼스의 추억을 가진 분을 이렇게 만났군요! 더구나 당시에는 졸업 후 대도시로 나가 기반을 잡는 게 시대 분위기였을 텐데 밀양을 떠나지 않고 고장을 지켜온 셈이네요. 이쯤 되면 앤의 밀양소통협력센터 합류는 운명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 계기라기보다는 제가 한 곳에서 26년 직장생활을 했는데 몇 년 전 번아웃이 오면서 건강까지 나빠졌어요. 직장과 육아에 전력을 다하면서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지쳤던 거예요. 아!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이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나 싶어 그로부터 3년을 고민하다 사표를 냈어요.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표가 반려된 거죠. 직장을 그만두기도 어렵더라고요.

한편으로는 회사에서 앤을 놔주고 싶지 않았던 건데 막상 본인은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았으니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 네. 그래서 조금만 더 참아보자, 참아보자 하면서 버텼어요. 밤 11시까지 불철주야 노력한 덕분에 더 높은 자리로의 승진이 코 앞으로 다가와 그만두기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정이 쌓였던 동료들 덕분에 참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3년을 더 일하고 올해 초 퇴사했습니다. 26년간의 직장생활을 드디어 마감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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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또 일하고 계십니다. (웃음)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여기에 계시면 안 되잖아요.

🏃‍♀️ (웃음) 그러게요. 퇴사하고는 이제 나에게 집중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이제야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된 거죠. 그래서 최소한 1년은 쉬면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다 해보기로 했어요. 달리기를 시작했고 피아노와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죠. 무엇보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어요.

26년 동안 한결같이 살아온 삶에서 커다란 전환을 이뤄냈군요. 정말 소중한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게 된 건데 현재는 다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사이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 어느 날 친구가 밀양시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밀양소통협력센터 동료 모집공고를 보고 제게 연락을 해왔어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같다며 한번 지원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이죠. 솔직히 부담 없이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말씀드렸듯이 최소 1년은 쉴 참이었고 고등학생이 된 딸아이와 시간도 많이 보내면서 이것저것 제가 해보고 싶은 일도 하나씩 배우고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까지 합격한 터였어요.

그래서 일단 밀양소통협력센터의 모집공고를 살펴봤어요. 그랬더니 아닌 게 아니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서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라 생각하고 일단 지원서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했더니 제가 이런 입사 지원서를 써본 게 26년 전 취업할 때 써보고는 처음 해보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밀양소통협력센터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도 하고 요즘 밀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면서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랬더니 덜컥 서류전형 합격이라며 면접을 보러 오라는 거예요.(웃음)

26년 만에 입사 면접을 해보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 우선은 제가 그날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폭풍 질문이 쏟아졌어요. 거의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저를 무척 편하게 대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제가 면접 보러 간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들 저보고 아니 왜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급여도 줄어드는 그런 곳에 가려고 하냐며 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물론 저의 지난 26년은 가족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이라 돈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삶의 전환을 이루려는 순간에 마주한 새로운 일자리 기회에서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고 또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면접 때 제게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업무가 많을 때는 야근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지난 직장에서 야근은 필수였어요. 거의 매일 밤 11시까지 정신이 없을 정도였어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상황인데 야근이 가능하냐고 물어서 움찔했어요.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제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도의 야근이더라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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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합격! 하셨어요. 이제 4개월 정도 되셨는데 실제로 그런 곳 같아요?

🏃‍♀️ 막상 와보니 역시나 기존 직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근무환경이었어요. 일터에서 소진되는 느낌이 아니라 매일 뭔가를 배우러 간다는 느낌이랄까. 살아가는 방식, 일하기 방식, 소통 방법 등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소통협력센터 사람들이 신기했어요. 전국 각지에서 밀양까지 와서는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갈까. 더구나 자신의 돈으로 거처까지 마련해서 말이죠. 저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결이 달라 보였습니다. 이른바 세속적 욕망보다는 가치에 더 중점을 두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니까 이런 삶이 가능하겠구나,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치열하게 사는 것과 가치관을 추구하는 건 다른 거였더라고요. 지금은 오히려 제가 이들을 기꺼이 돕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한다기보다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어 제게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삶의 전환을 이뤄내신 거네요.

🏃‍♀️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동안 제가 일해왔던 곳이 세상 전부인 줄 알았어요. 마찬가지로 그곳을 떠나면서도 내게 다른 세상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곳을 벗어나니 또 다른 삶이 이렇게 오네요. 생각도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요. 지금까지 저는 제가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여겼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렇게까지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거예요. 환경에 의해 제 삶이 많이 지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꽤 자유로운 영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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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바꿔볼게요. 앤은 밀양에서 자랐고 한 번도 타지역에 나가지 않고 지금껏 밀양을 지키고 있어요. 그렇다면 밀양의 변화를 직접 봐왔을 텐데요. 현재 밀양은 시 단위 도시 중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역입니다. 실제로 앤의 친구 대부분이 밀양을 떠나 살고 있나요?

🏃‍♀️ 네. 맞아요. 타지역에 사는 친구가 더 많습니다. 아니면 타지역에 살다가 돌아온 친구도 있고요. 지금도 비슷하지만 과거에는 졸업 후 더 큰 지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오히려 제가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죠. 그래도 밀양대가 있었던 시절에는 거리에 활력이 넘쳤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거리에 학생이 많았어요. 오늘날 밀양의 쇠락은 밀양대 폐교 영향이 꽤 큰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소통협력센터가 밀양대 캠퍼스에 공들이는 이유도 밀양대가 비록 과거의 대학처럼 부활하지는 못하더라도 지역 활력의 중심지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데 있죠. 밀양대 시절의 앤은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금융권에 취업한 터라 바로 대학에 갈 수 없었어요.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에도 금융권 취업은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여하튼 어린 나이에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대학 생활을 너무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대입 준비를 해서 합격을 하고 그 때부터 일과 학업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을 많이 빼먹기도 했는데 그래도 대학 축제 시즌이 되면 캠퍼스 안을 이곳저곳 누비며 신나게 놀기도 했습니다.

밀양 사람으로서 밀양이 다시 활력을 찾으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 무엇보다 사람들이 여기서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문제는 로컬크리에이터나 농촌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일반 청년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거죠. 일자리가 있는 타지로 나가면 될 일을 굳이 내가 여기서? 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일반적이죠. 그렇다면 이런 근본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뭔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공단을 유치해 일자리 만드는 걸로만 그칠 게 아니라 계속 유입이 이뤄지도록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만해도 아이랑 영화를 보려면 부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영화 보러 간 김에 쇼핑도 하고 맛집도 가보는 식으로 뭔가 할 거리가 많기 때문이에요. 다양한 즐길 거리에 있는 거죠. 그런데 밀양은 그런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약해요. 그러니까 부모 대부분은 자식에게 너는 큰 데로 나가 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부모로서는 자식이 많은 경험을 하길 바라니까요.

하지만 최근 로컬에 청년이 모이는 현상을 직접 접해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기회가 더욱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찬찬히 따져보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밀양에 찾아오는 사람도 늘어나고 밀양을 떠나지 않는 사람도 조금씩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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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중에서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은 걸 꼽으신다면?

🏃‍♀️ 제가 밀양소통협력센터 면접을 볼 때 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그때 망설임 없이 봉사활동을 꼭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동안은 일하느라, 살아가느라 못한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인데 밀양소통협력센터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해외 선교 활동 차원에서 봉사활동은 반드시 해보고 싶어요.

역시 훌륭한 앤!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앤이 추천하는 밀양 맛집과 본인이 좋아하는 밀양의 장소입니다.

🏃‍♀️ 밀양은 아시다시피 돼지국밥이 유명한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밥은 소국밥입니다. 밀양 무안면에 있는 ‘밀양제일식육식당’이란 곳인데 거기 형제들이 독립해서 차린 ‘동부식육식당’과 ‘무안식육식당’ 이렇게 세 곳이 모두 맛있어요. 원조집인 밀양제일식육식당을 운영했던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곳들이죠. 제가 옛 직장을 다닐 때 자주 찾던 곳이고 저에게는 소울푸드급입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장소는 산외면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있는 길인데요 고속도로 밑에 작은 산책로가 있어요. 그곳에 가면 나무 그네가 있는 고즈넉한 공간이 있습니다. 요즘은 그곳 주변에서 걷기대회가 열리기도 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져 나만의 비밀 장소는 아니게 됐지만, 그래도 가끔 그곳에 들러 그네를 타곤 합니다. 저만의 힐링 스폿이랄까요?

그네에 앉은 앤의 모습을 상상하니 정말 빨간머리 앤처럼 느껴졌다. 앤의 앞날이 더욱 충만하길 바란다.

interview by ☕소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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