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9.
이번 내부자들 인터뷰는 송년 특집으로 마련했습니다. 송년 특집 인터뷰 대상은 누구랄 것도 없이 만장일치로 무조건 ‘먼슬리밀양 : MM’의 편집장 해나를 꼽았습니다. 그간 뉴스레터 편집장으로서 활약해온 해나를 많은 독자가 궁금해했을 텐데 드디어 베일에 싸인 그분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는 글로벌 힙스터 해나는 소통협력센터의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합니다. 항상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센터 내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로 모두의 귀를 호강시켜주는 해나. 동네 커뮤니티와 문화예술, 스트리트 서브컬쳐, 패션과 환경에 관심 많은 해나를 만나보시면 바로 그를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자, 바로 시작합니다!
☕ 안녕하세요! 우선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밀양소통협력센터 소통지원팀에서 홍보·콘텐츠와 로컬포럼 그리고 밀양대 리브랜딩 프로젝트 등을 담당하는 최현아라고 합니다. 센터에서는 해나로 통합니다.
☕ 해나는 어떤 의미가 담긴 닉네임이죠?
☘️ 저는 창원에서 자랐는데 친척들이 다 경남 사람이라 저를 부를 때 현아를 “해나야~”라고 불렀어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래서 제겐 해나라는 이름이 익숙해요. 그러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캐나다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내 고유의 이름을 놔두고 굳이 영어 이름을 정하기 싫어서 ‘현아’라고 소개했더니 발음을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그게 또 은근히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해나’로 타협을 봤죠. 한국에서도 불리던 이름이고, 외국인들도 편하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이었거든요. 또 스펠링이 ‘HANNAH’로 앞뒤가 똑같아서 그런 작은 포인트도 마음에 들었어요.
☕ 하긴 외국인이 ‘현’ 발음을 어려워하긴 하죠. 해나, 잘 어울리는 이름 같습니다. 그런데 방금 창원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태어난 곳도 창원인가요?
☘️ 정확히 얘기하면 저희 부모님이 서로 만난 곳이 창원이에요. 원래는 신혼집을 창원에 마련했다고 해요. 그런데 저를 낳을 무렵 그래도 우리 아기는 어릴 때만이라도 공기 좋은 데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김해 주촌면에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했죠. 그래서 태어난 곳은 김해이고, 그곳에서 유치원 들어가기 전까지 살다가 창원으로 돌아와 줄곧 창원에서 지냈어요. 워낙 어릴 때라 제겐 창원이 더 고향처럼 느껴지긴 합니다.
☕ 멋진 부모님이시네요.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군요. 김해에서의 기억이 남아 있을까요?
☘️ 그럼요. 마당에 포도나무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집을 포도나무집이라고 불렀죠. 그곳에서 개미와 길고양이를 쫓아다녔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의 유일한 아가였던 저와, 젊은 우리 부모님을 다들 예뻐해 주셨어요. 지금도 전원의 삶을 동경하는데 아마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그 집이 남아 있어요. 창원으로 돌아올 때 그 집을 팔았는데 그 후 부모님이 그 집을 다시 사셨거든요.
☕ 팔았던 집을 다시 샀다니 부모님께서 그 집에 대한 추억이 소중했나 봐요. 멋지시네요.
☘️ 여기서 약간의 반전이 있습니다. 다시 그 집을 샀을 때는 당장 다시 이사할 생각은 없었고 일단 사놓고 비워뒀었어요. 마당이 있으니까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랑 주말 텃밭 가듯이 방문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갔더니 집안에 누군가 살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세를 놓은 적이 없는데 말이죠. 알고 보니 노숙자 한 분이 살고 계셨던 거예요. 사실 좀 놀랄 만한 일인데 엄마 아빠는 어차피 집에 사람이 안 살면 관리도 안 되고 하니 월세 10만 원만 받고 그분을 계속 살게 해줬어요. 그렇게 10년 넘게 이어졌죠.
☕ 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부모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의인이십니다.
☘️ 막상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쓰러웠나 봐요. 아마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해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 그럼 해나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두 군데나 있는 셈이네요. 창원과 김해.
☘️ 예전에는 누가 고향 물어보면 그냥 창원이라고 했는데 요새는 어릴 적 김해에서 살았던 추억이 자주 되살아나요. 그래서 김해를 고향으로 인정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그런데 창원도 세 개의 도시가 합쳐진 거잖아요.
☘️ 맞아요. 마산과 진해 그리고 창원이 합쳐졌죠. 전 그중에서도 창원이 본거지였어요. 그렇지만 진해와 마산에서도 회사 생활을 했기에 통합창원시 세 개의 도시를 전부 다 밀도 있게 겪어봤습니다.
☕ 아까 캐나다에서 인턴십을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가게 되신 건가요?
☘️ 학생 때 누구나 한 번쯤은 해외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그런 꿈을 꾸잖아요. 해외 봉사 활동이든 교환학생이든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런 프로그램 정보에 좀 어두운 편이었어요. 항상 어느새 신청이 끝나있고 그랬어요. 그러다 해외 인턴십 모집 공고가 딱 뜬 거죠. 이게 졸업 전 마지막 기회였어요. 그때 여러 나라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캐나다가 왠지 살아보고 싶었어요. 글로벌비즈니스학부 경제학과라는 전공에 맞게 금융회사에 배정해 준다기에 손사래를 치며 제발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재밌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밴쿠버의 관광회사에서 마케팅&세일즈 인턴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이왕 온 거 나의 인생 첫 타지인 밴쿠버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었는데 코로나19가 덮치면서 6개월 만에 귀국할 수밖에 없었죠. 짧은 시간이지만 전 세계에서 온 여러 친구들을 만나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 코로나19가 정말 많은 것을 흔들어 놓았죠. 그럼 어떤 계기로 소통협력센터에 합류하게 되신 건가요? 해나처럼 글로벌하게 활동했으면 보통 대도시로 나갔을 거 같은데요.
☘️ 예전에는 무조건 그러고 싶었어요. 저는 항상 목이 말랐거든요. 저쪽은 항상 재밌어 보였죠. 더구나 제가 있던 곳은 대도시의 트렌드가 항상 뒤늦게 찾아오곤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요. 나도 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조건 나는 서울이나 부산, 아니면 최소 광역시로 갈 거다, 이런 생각을 항상 했었죠. 그런데 캐나다에 있을 때 한국에 있던 친구가 도시재생 뉴딜사업 청년인턴이라는 게 있는데 도시재생 업무랑 내 관심사가 많이 겹친다면서 내가 좋아할 것 같으니 한번 도전해 보라는 거예요. 사실 부끄럽지만 도시재생이란 개념을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쯤 더 많은 경험치가 쌓였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고 얼마 안 가 인턴십 공고가 나와 지원해 다니게 됐죠. 창원의 여러 센터 중에 근무지 지망을 할 수 있었는데, 그중 진해는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곳이라 진해 충무동으로 첫 근무지를 정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우리나라 도시재생 1번지인 마산 창동에서도 잠깐 일을 했지만요.
그렇게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도시재생 뉴딜사업 업무를 하게 됐어요. 인턴으로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죠. 그때 ‘공유를위한창조’를 알게 됐어요. 그 바닥에서는 모를 수가 없는 회사였어요. 부산 이바구캠프부터 거제 아웃도어아일랜드까지 이어지는 성장 과정이나 조직 문화 등을 들여다보면서 동경하는 팬이 됐습니다. ‘저런 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저런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어요. 그래서 당시에 공유를위한창조의 빌리(밀양소통협력센터 박은진 센터장)와 쏜바(공유를위한창조 손유진 팀장)를 강연자로 섭외하기도 하고 제가 직접 거제로 출장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공유를위한창조가 밀양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기 위해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하지만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슬슬 자리를 잡던 터라 바로 움직일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올해 초에 모집공고가 다시 올라온 거예요. 재공고가 뜬 것을 보고 끓는 피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 바로 지원했고, 결국 4월부터 밀양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잠깐 공간팀 소속이었다가 현재는 소통지원팀이고 내년부터는 시민협력팀으로 옮겨가니 센터 내 모든 팀을 다 거칠 유일한 사람이 바로 누구? 네. 해나입니다. (웃음)
☕ 그때 밀양으로 회사를 옮기고 심지어 창원에서 밀양으로 혼자 나와 살게 됐는데, 부모님은 뭐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 그 얘기는 좀 있었어요 창원시도시재생지원센터라고 하면 뭔가 시 이름도 들어가고, 공신력 있어 보여 부모님은 딸이 건실한 회사 다니는 것 같아 은근 만족하셨거든요. 그런데 뜬금없이 밀양을 간다고 하니까 단박에 ”니 밀양 그 촌에는 뭐 한다꼬 가는데?!“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더 재밌는 일 하려고 간다고 말씀드렸죠. 지금은 제가 너무 재밌어하는 게 보인다며 걱정 안 하세요. (웃음) 어릴 때 가족들과 여름 휴가를 항상 밀양 얼음골으로 와서 일주일 넘게 텐트 쳐놓고 놀았거든요. 제가 요즘 밀양에 온 덕분에 가족들이 그때를 많이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 해나는 센터에 없어서는 안 될, 대체 불가능한 인재인 것 같습니다. 그 많은 센터 내 사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SNS로 홍보하고 있고, 또 뉴스레터 편집장에 밀양대 리브랜딩 관련한 작업에 포럼과 컨퍼런스 진행 업무 등 정말 많은 일을 쳐내고 계십니다. 이런 능력들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 원래는 어릴 때부터 끼를 주체하기 힘들어 가수나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발 평범하게 좀 살면 안 되겠냐는 집안의 격렬한 반대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부모님은 네가 제일 잘하는 영어 실력을 살려 해외 유학을 다녀오면 영어학원을 내주겠다며 꼬셨어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뭔가 아이디어를 내는 활동을 좋아했어요. 항상 친구들에게 아이디어뱅크란 소리를 들으면서 방송부, 청소년 서포터즈 활동 등을 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하는 일이 기획인 줄도 모르고 한 거죠. 대학에서는 교내외의 다양한 활동들에서 홍보·기획을 주로 담당하며 견문을 넓혔습니다. 그러다 인턴십을 갔던 캐나다에서 다양성이 무엇인지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경험했던 원도심 활성화 업무라든가 관광·문화·건축·상권·청년 등의 키워드로 사업을 전개하는 게 재밌었어요. 아마도 제게 말씀하신 그런 능력이 있어 보인다면 이러한 경험이 축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요.
☕ 올해 센터에서 수행한 업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콜렉티브 로컬포럼, ‘2023 MCC(Miryang Connective Camp)’를 진행한 일입니다.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로컬연결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연결의 장이었습니다. 포럼 준비를 위한 프리스텝으로 ‘목말라, 연결 한 잔 주세요_Thirsty Club’을 진행하며 경남 곳곳의 연결자를 만났었는데, MCC에서 또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 조력자, 서로 응원해 줄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활동과 비전, 고민을 공유하며 느슨하지만 끈끈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올해가 ‘연결’의 초석이었다면, 내년은 ‘협업’의 단계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해나는 이른바 청년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지금 언론에서는 한국의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위기를 연일 걱정하고 있는데요. 정작 지역에서 살아온 청년이 느끼기엔 어떤 것 같으세요? 실제로 창원에서 사실 때나 밀양으로 왔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사실 지역이 쇠락한다는 것을 일상에서 체감한다기보다는 뉴스에서 보고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언론에서 자꾸 창원 100만이 붕괴할 수도 있다고 하고, 밀양도 10만 붕괴 얘기를 하니까 느끼게 되는 거지 평소에는 딱히 와닿지는 않아요. 다만, 청년 일자리에 대한 문제는 심각하게 체감됩니다. (물론 노인과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일자리도 마찬가지로 관심과 걱정이 많습니다. 여기서는 우선 청년에 관해서만 말해보자면...) 여전히 제 주위 친구들 중에는 아직 취업을 못 한 경우가 많아요. 저보다 공부도 잘했고 자격증도 많은데도요... 정말 취업은 노력이 아니라 운인 거 같습니다. 오버스펙 수준으로 준비를 해도 애초에 사람을 뽑질 않으니까요. 그렇게 일자리가 없는데도 자꾸 애 낳아라, 결혼해라 그런 얘기만 하니까 솔직히 ‘우리를 뭘로 보는 거지? 옛날이랑 지금은 다른데. 우린 그냥 출생률을 위한 도구인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자꾸 ‘90년생이 온다’라며 쪽수가 많은 90년생들이 출생률 상승에 힘을 보태주길 기대하는데, 아니 90년생이 오니까 안정적인 일자리부터 만들어 달라고요. (웃음)
요새 돈 없어서 애 못 키우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결혼·출산 장려금은 팍팍 퍼주고 있죠. 그런데 취업이 안 되는데 누가 결혼부터 생각하겠어요. 지금 고작 200만 원 주는 직장도 가기 힘든, 당장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든 상황인데 이 나라는 이 상황에서 나의 결혼과 출산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결혼만큼 청년의 기반 안정을 위해 팍팍 퍼준 적이 있나?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솔직히 서운합니다. 특히 여성으로서 출‘산’율 얘기가 나올 때는 화도 나요. 출생률이 이렇게 이례 없이 줄어든 건 당연히 문제죠. 문제인데, 왜 애를 안 낳는지부터 궁금해하고 그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냅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며, 출’산’율 해결사가 되어달라며 연애·결혼·출산만 열심히 조장하니 황당합니다. 여기서 정말 이기적인 건 누구일까요? 내 등이 따시고 내 배가 부르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 억지로 등 떠밀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할 겁니다.
☕ 친구 중에 해나처럼 도시의 취업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가는 걸 봤을 텐데요. 그런 해나의 모습을 보고서 지역에 관심을 갖거나 지역활동에 뛰어들겠다는 친구는 없었나요?
☘️ 물론 있긴 하죠. 그런데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아직 안정적인 직장이 없거나, 당장 벌어먹는 것이 벅찬 친구들이 많아 일단은 지원사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또 지원사업은 인건비 책정이 힘들다 보니(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항상 돈이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집안 형편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시도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구나 어렵게 한번 시작한다 해도 지속성을 확보하는 게 힘들죠. 저도 청년 당사자이자 중간지원조직 사업 담당자로서 어떻게 하면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그나마 있던 사업들도 많이 없어지고 축소되는 상황이라 발 디딜 데 없는 이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 밀양으로 이주해서 밀양에서 일하고 있는데 해나가 보기에 밀양은 어떤 도시 같아요?
☘️ 밀양은 도농복합도시라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보면 참 애매한 것 같아요. 완전 농어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 색깔이 드러나는 지역 범위가 큰 것도 아니고요. 저는 창원에서 살면서 항상 갈증이 있었어요. 내가 지방에 있어서 잘 모르고 자주 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콤플렉스라고 할까요? 더 많은 문화와 신문물의 현장에 놓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광역시와 서울을 자주 오가며 목마름을 해소하기도 했고 인사이트를 얻기도 했어요.
그런데 100만 도시 창원에서 10만 도시 밀양으로 오면서 밀양 사람은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할 때 창원이나 대구 또는 부산, 김해 등 인근 대도시에서 해결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냥 창원 가면 되니까~“라고 크게 불편한 일이 아닌 듯 이야기하는 것이 여러 방면에서 충격이었습니다. 그 흔한 인프라가 없어 주변 대도시에서 해결하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 여기는 것. 딱히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창원에서 창원보다 더 큰 도시를 바라보며 콤플렉스와 목마름을 느꼈던 제가 밀양에 오면서 동질감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정말 많다는 걸 느꼈죠.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밀양에서의 변화나 발전이 더딜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그걸 한 번 깨보고 싶습니다. 왜 꼭 다른 도시로 가서 해소해야 하죠? 밀양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이게 단순히 쇼핑이나 영화를 말하자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의 밀양에는 없었던 팝업 마켓이나 취향 기반 커뮤니티, 다양한 문화를 접하거나 향유할 수 있는 기회 등을 여기서도 충분히 만들고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잘나가는 도시의 무엇을 밀양에 들여오자~가 아니고 밀양은 못해, 밀양은 안돼 이런 말에 저항하고 싶은 거 같아요.
그렇지만... 예전의 저는 무조건 대도시, 트렌드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었지만 사실 지금의 저는 정말 완전 시골에서 살고 싶거든요. 어릴 때의 기억이 크긴 컸나 봐요. 평소에는 사람도 뭣도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 새소리, 물소리 들으면서 평상에 누워있고, 친구를 만나고 싶고 문화생활이나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면 그때마다 인근 대도시에 나가면 되지 않나라는 주의예요. 이렇게 생각하면 (밀양은 완전 시골은 아니지만) 사람이나 인프라가 필요할 때 저러면 되니까 위에서 말했던 분들이 일상에서 굳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구나라고 이해가 되긴 해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면서 정작 그렇게 살고 있을 수도 있는 사람들한테 그러지 말자고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어딘가 마음 한 켠으로는 변화없는 지역에 대해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끼고 목 말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저는 확인했어요. 어쨌거나 밀양도 한 번 변해 볼 수 있잖아요? 그냥 조금 더 살기 좋고 뭔가 작년보다 올해 더 재미난 동네 만들기, 해 보는 거죠 뭐.
☕ 내년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밀양에서 제 또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밀양 오자마자 찾았던 게 또래 커뮤니티예요. 그러다 수요일마다 책 읽는 청년 북클럽인 ‘수북’을 알게 돼 참여하고 있지만, 조금 더 다양한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고, 취향과 경험의 범위를 넓히며 동네 친구를 찾을 수 있는 모임이 지금 제게 매우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직접 꾸려볼까 하는데요. 말만 해놓고 귀찮아서 안 할 수도 있으니 일단 여기에라도 선언을 해놓는 게 낫겠죠? 그러니 밀양 청년 여러분, 내년에 제가 꼭 또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웃음)
또 밀양 지역 밴드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창원에서는 팀을 꾸려 공연과 버스킹을 종종 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때는 기존에 발매된 곡들을 부르기만 했다면 이제는 지역살이를 하며 실제로 겪는 일들과 나의 생각을 담아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다만... 악기 연주가 서툴러서, 나와 같이 소규모 밴드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서 악기 연주가 가능한 또래 친구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밀양이든 아니든 지역에서 브랜드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I♥NY’을 보면서 저렇게 본인의 지역(혹은 본인의 지역이 아니더라도)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지역 패션 브랜드가 없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샌가부터 여기저기서 그런 지역 브랜드가 나올 때마다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특히 부산의 ‘발란사’나 마산의 ‘마사나이’ 등을 보며 더더욱 그래 이거였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굿즈·패션아이템=환경오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풀어가야 환경도 지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그냥 계속 생각만 해본 거라 진짜 하진 않을 수도 있어요. 지금 당장 제 코가 석자라... 참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체력이 안 따라 주네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년에는 체력 증진부터 필수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위에 나열한 것들을 정말 하게 되면 박수 쳐주시고 안 한다면 그냥 모른척해 주세요. (웃음)
☕ 패션 감각뿐 아니라 여러모로 해나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밀양에 오면서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됐는데, 일 말고 자유 시간에는 주로 뭐 하고 시간을 보내세요?
☘️ 밀양에 처음 왔을 때는 집도 열심히 꾸미고, 기타도 배우고, 블로그도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제가 블로그를 진짜 열심히 했었거든요. 몇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일기는 무조건 쓰고 그 외에 다른 것도 되게 많이 기록했는데 바쁘기도 하고 피곤하니까 점점 안 하게 됐어요. 그래도 처음엔 책도 자주 읽었는데 이제는 책도 점점 쌓여만 가고 있네요. 보통은 매일매일 새로 나온 노래들을 들어보고, 요리를 하고, 가끔 산책하거나, 더욱 가끔 책을 읽거나, 아니면 창원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기도 합니다. 친구들을 자주 초대해야 억지로라도 집을 말끔하게 유지할 수 있거든요. (웃음) 친구들한테 장난삼아 올해는 ‘밀양 방문의 해’이니 꼭 와야 한다고 꼬셔요. “너네 내가 밀양에 있는데 한 번을 안 와본다고?!” 그래도 한 번 와보면 밀양의 매력에 빠져 또 오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러면 밀양 방문의 해라는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오지 않을까요? 이렇게 또 은근슬쩍 관계인구를 만들어 가는 거죠. 아직 못 온 친구들아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년에는 꼬옥 오렴…
☕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바로 그 질문! 해나의 밀양 맛집 베스트3는 어디인가요?
☘️ 일단, 밀양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DK치킨(구 동키치킨)’입니다. 여긴 무조건입니다. 치킨집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사장님도 친절하셔서 친구들이 오면 꼭 데리고 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밀양시네마 옆의 ‘#타코야키’ 파닭꼬치와 동가리 골목의 ‘노노하나’ 닭튀김 정식입니다. 말해 놓고 보니 전부 닭 요리네요. (웃음) 너무 육식 조장을 한 것 같아 살짝 중화시켜 보자면... 밀양의 생태전환플랫폼이자 비건베이커리, 제로웨이스트샵인 ‘가치쓰제이’의 음료와 빵은 전부 맛있어요! 특히 쌀식빵과 베이글은 최고예요. 저는 평소에 빵을 엄청 좋아하진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치쓰제이 빵은 매일 먹고 싶어요. 입맛 없을 때 먹으면 입맛이 살아납니다.
☕ 밀양 관계인구 확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셨네요. 앞으로 해나의 밀양 라이프를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interviewed by ☕소보로
더보기
2024. 2. 28.
2024. 2. 28.
2024. 2. 28.
2024. 1. 30.
2024. 1. 30.
2024. 1. 30.
2023. 12. 29.
2023. 12. 28.
2023. 11. 29.
2023. 11. 28.
2023. 11. 24.
2023. 10. 24.
2023. 10. 24.
2023. 9. 22.
2023. 9. 22.
2023. 8. 30.
2023. 8. 29.
2023. 7. 31.
2023.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