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8.
동글이 이야기 하는 농(農)살림 “이제 같이 해보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정선 할머니(88세)의 뿔시금치
점난 할머니(80세)의 서리태
영자 할머니(73세)의 푸른콩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경남지역에서 동글이 수집한 토종씨앗의 목록 중 일부이다. 짧게는 20년 대부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대대손손 이어져오는 ‘토종 씨앗’이다.
동글은 지역에서 사라져가는 씨앗과 문화들을 기록하고 이어가기 위해 씨앗 수집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역의 오일장터에서 1차 토종씨앗 수집을 진행하였고, 2차 수집으로 대대손손 씨앗으로 농사짓고 있는 농부들을 찾아 마을로 수집을 이어가고 있다. 뚜벅이인 동글은 가장 좋아하는 백팩에 물병 하나는 꼭 챙겨들고 길을 나선다. 낯선 처자가 찾아와 씨앗을 얻으러 왔다고 하면 경계하는 눈빛도 보이지만, 그럴 때 그녀가 먼저 모아두었던 씨앗들을 꺼내어 내어놓으면 이내 안심하는 표정이 올라온다. 동글이 가져간 작은 씨앗 함 속에는 어르신들의 씨앗이 옹기종기 담겨있다. 저마다의 씨앗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왔던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올해는 씨앗으로 연결된 귀남 어머니와 어머니의 대대손손 이어져온 호밀과 콩으로 장 담그기도 함께 할 예정이란다.
<농가씨앗수집 _ 대대손손 귀남어머님네>
"나누는 품을 가진 문화였던 것 같아요. 그분들이 가지신 품이 있어요.”
밀양소통협력센터의 ‘커뮤니티랩’ 지원사업으로 지난 두 달간 토종씨앗 수집, 나눔, 공유하는 활동을 해온 ‘우리동네 씨앗 할멘토’ 활동의 마지막 여정인 토종씨앗 전시회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동글)사람은 만나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여러분 만나려고 이 자리 연 거예요.”
이날 현장에는 거제에서 오신 두 분이 첫 손님으로 오셨다. 신영자 농부는 거제에서 자연과 더불어 농사 지으며 토종 농사를 이어가고 있는 농부이다. 그간 전화를 통해서만 연락하던 동글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 다른 일정이 있는데도 약속을 바꾸어서 이 자리에 함께 했다. 거제에서도 지속 가능한 농업과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청년과 농부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먼 거리마다 않고 와주셨다. 마음의 거리는 이미 가깝지만 일손이 세 개라도 부족한 생태 농부들에게 같은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신영자 : 거제토종씨앗연구회) 제가 다양한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계속 짓고 있지만, 이팥은 처음 봤어요.”
“(동글) 선생님 같은 농부가 이렇게 계시니 제가 연결을 할 수 있어요. 저도 농사를 짓고 싶지만 땅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 같아요. 땅을 보살피는 농부로부터 연결되어요.”
또한 토종씨앗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돼야 할 것은 다국적기업의 종자산업화 대응에 관한 것이다. 세계 각 지역에서 이에 대항하는 많은 운동이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인도의 반다나 시바가 앞장서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했던 비정부기구 ‘나브다냐’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씨앗을 하나의 생명, 공유자원으로 보지 않고 산업화, 유전자 변형 등으로 독점하는 것을 막고 토종 씨앗을 보존하며, 전통적인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 발족한 운동이다. 거대 다국적 종자회사가 1995년 유전자 변형 콩을 상품화하면서 씨앗을 독점하려는 시도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에 저항하는 운동 또한 활성화되었다. 생명권과 무분별한 제초제 사용이 지속해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농업의 구조는 지구의 터전인 땅의 생명도 파괴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화 되어가는 농업의 구조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각지의 토종씨앗 지킴이 농부와 시민들이 함께 씨앗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남일보 이윤선의 남도인문학>“토종씨앗은 한 알의 우주 씨앗이다”2023. 01.26 참조)
<농가 씨앗수집_ 소라마을>
그중에서 전국 토종 씨드림의 활동을 참고해 보면 2008년부터 수집하기 시작한 ‘토종씨앗’이 2021년 1월 기준 180작물, 7831점이다. 많다면 많은 숫자이지만 아직 닿아야 할 지역이 더 많기에 나누고 이어가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씨드림의 기준으로 2020년까지 31개 지역(중복 포함)에 방문 수집이 이뤄졌으니 우리나라의 시군구가 260개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 10% 정도에 발걸음 이 가닿은 것이다. 게다가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분들의 대다수가 80세 전후의 어르신분들이라 다음 세대에게 전해 줄 씨앗과 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어르신들이 가진 유산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야기는 아래 기사의 한 대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서무’ 종자를 갖고 계시던 장수군의 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외손자에게 ‘이 씨앗을 유지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그 후 외손자는 진안에서 동네 이장으로 활동하면서 20년 이상 산서무를 재배해왔고, 그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농정신문. 2019.01.27)
그렇기에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손에서 손으로 씨앗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분들이 '행동하는 대안'으로 실천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동글과 같은 젊은 이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남겨야 할 것을 남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동글) 저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고, 있는 것을 연결한다 생각해요. “
그녀는 만나는 내내 ‘연결’을 강조한다.
함께하는 농부들에게 소비자들과 연결될 수 있는 SNS 활용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가가호호 나누며 살았던 문화에서 도시문화로 변화하면서 농부는 소비자와 연결되어 농사를 지속하는 구조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농부(생산자)와 소비자는 결국 이웃이며 더불어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큰 연결고리로 서로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관계라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농과 삶은 따로가 아니라 한 살림이라는 것을 친구 할머님께 배웠어요. 지금 시대에 맞게 잘 버무려가야 하는 중심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농가씨앗수집_대대손손 명촌할머님네>
누군가는 씨앗은 주인을 닮는다고 이야기했다. 심은 것을 거두고, 갈무리하고 보관하고, 다시 심으며 계절과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함께 함축이 되어서 지 않을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부족한 것은 서로 나누고 보태는 삶의 방법들이 곧 전통농사이고, 밥상의 모습이란다. 생명다양성을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오늘날 필요한 지혜라고 동글은 말한다.
전시를 보고서 함께 식사를 하러 식당에 왔다. 평소에도 너무 좋아하는 식당이라는 그녀의 추천 밥집이다. 식사에 앞서 그녀는 한가득 야채가 담긴 도시락을 꺼내어 놓는다. 건강한 땅에서 자란 야채를 매끼 먹는 것은 습관이 된 삶의 방식이다.
“(동글) 샐러드가 좋은데 채소마다에 성질이 있더라고요. 잎채소 뿌리채소 이렇게요. 잎채소나 땅기운 없이 과다한 비료와 거름, 농약으로 자란 채소들만 먹으면 거기에서 오는 불균형이 또 있더라고요. 기본 원리는 아주 간단한데 너무 복잡한 세상인 것 같아요.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이해하면 모든 게 간단해지는 것 같아서 그러한 공부를 함께할 친구들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이러한 내용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의 삶과 일상으로 스며들고 행동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하다고 동글은 말한다. 그래야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후 위기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혜롭고 빠른 대안적 삶으로의 변환이 필요함을 인식을 하게 되었고, 전통과 현대의 통합적 방법들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책임감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즐기며 천천히 나아가던 삶의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돌리고 있다고 한다.
‘노래하라 춤을 추라 , 행동하라 지금 여기에서’
“(동글)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부식(食)보다 주식(食)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간식은 너무 많아 과다이지만 영양은 결핍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 우리동네 씨앗 할멘토 토종씨앗전시회>
“(동글) 기본을 되살리는 것' '알아차림' '재발견' '비우는 것'이라는 중심을 가지고 단순하지만 튼튼한 뿌리를 만들어 가면 많은 대안들이 생겨날 것 같아요.”
동글은 ‘커뮤니티랩’의 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구수하-이(goosoohi)’라는 팀으로 토종 통곡물과 발효문화를 활용한 통곡물 간편식을 개발하고 있다. ‘보글말랑’ 프로젝트는 생태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부들과 함께 국산 친환경 통곡물(쌀, 잡곡, 두류)을 활용해서 구수한 맛과 영양이 살아있는 주식(主食)을 만들기 위해 활동이다. ‘보글’은 발효를 활용한 우리콩 두유 요거트 그리고 토종통곡물로만든 그래놀라로 만드는 한 끼다. 말랑’은 발효를 활용한 통곡물증편과 전통장 발효소스로 만든 샌드위치다. 최근에는 개발한 식사에 대한 시식회도 진행했는데 평가가 좋았다.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청년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농부들에게 SNS를 하기를 권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하루에 30초씩만 찍어서 올려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이 연결되면 새로운 만남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전시에서 함께 시청한 10분이 넘는 영상도 이렇게 짤막한 영상을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씨앗을 찾아다니는 여정이 따듯하고 유쾌하게 펼쳐지는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었다. 새로운 마을에 찾아가 낯선 이의 마음을 연다는 것이 누구에게 편한 일일까. 그러나 영상을 보다 보면 저런 여정이라면 나도 한 번 따라 나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 현장에 그녀와 함께 전시장을 지키던 성희 씨도 영상에서 볼 수 있는데, 창원에서 토종씨앗 수집 활동을 시작하면서 모집했던 두 번째 '씨앗 탐사단' 시민으로 만난 사이다. 수집 활동 영상에서 '좋은 친구도 만났다.'라는 이야기로 성희 씨와 동글이 함께 마을을 찾아다니는 에피소드들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큰 나무 밑을 걷고 있는 모습이 더 잔잔하고 느려 보이는 것은 느낌 탓일까?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은 공간에서 걷고, 보고, 들으며 함께 길을 나아갔던 두 사람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성희라는 동네 친구를 만났고, 함께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낸 것이 가장 큰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의미들을 욱여넣기보다는 더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씨앗도 수집하고, 새로운 대안 식단도 만들어나가고 있는 동글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그 힌트는 영상에 담겨있었다. 전시장에서는 씨앗을 수집하는 모습으로 끝이 났는데 더 만들어질 영상에는 씨앗을 심는 장면이 나오게 될 거란다. 그럼 동글의 목소리를 통해 그다음의 여정에 대해서도 들어보자.
“(동글) 이제 씨앗도 있고, 전시도 하고, 연결이 되면서 지역의 농부님도 알게 되었으니 다음 계획은 실천 가능한 도시의 자립이에요. 모두가 농부였던 문화에서 배웠어요. 농부와 소비자는 따로 또 같이라는 것을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가 없어요. 작은 텃밭에 땅을 일구어도 좋고, 여럿이 모여 공동 농사를 지어도 참 좋아요. 땅을 지키는 농부들의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밥상 농부가 되는 거죠 모두의 밥상에 땅의 감사함과 농부의 감사함이 깃들면 평화로와질 거라 믿고 싶어요.”
“(동글) 사람들은 자연이랑 있을 때 많은 게 단순화되는 것 같아요. 그 자체가 치유이라고 생각해요. 땅을 밟고 천천히 숨을 쉬고 있으면 그 자체로 충만해요. 자연이 선생님인 거죠. 자연의 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보고 싶어요.”
“(동글) 제가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인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밥탄다 불꺼라’의 場을 열어보고 싶어 기획 중이에요. 뜨겁게 타고 있는 지구에서 생명의 터전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이 밥솥에 밥이 타고 있는 모습과 비슷해 보였고, 활활 타는 불을 더 지피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서 지은 이름이에요.
밥은 생명. 몸과 정신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뒤늦게 알게 되었어요. 어른들의 삶을 통해서요.
개인적으로 도시생활을 하면서 진정한 어른이란 어떤 걸까. 어떤 사람들일까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를 떠나 다양한 곳을 여행하고 살아보며 많은 분들을 만날 기회들이 있었어요. 그 시간들에서 만난 어른들은 부드럽지만 강인한 삶을 살고 계신 듯했어요. 그분들은 ‘아가 밥 탄다 불 꺼라’ 하시며 먼저 뜨거운 불 앞에 서서 불을 꺼주시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불을 더 지피는 사람들도 많아 보여요. 위에 있는 밥만 먹으면 되니까. 당장에는 아래는 타도 위는 타지 않잖아요. 더 맛있는 거, 더 좋은 거, 아침부터 밤까지 생명이 아닌 쾌락과 미식을 논해요. 이상한데 아무도 이상하다 말하지 않아서 놀라워요.”
그녀가 식사를 마치면서 남은 반찬들을 도시락에 그러모은다. “이렇게 또 저녁 한 끼가 생겼네요.” 그녀는 처음에는 불편한데, 해보면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한다. 동글 옆에 있으면 왠지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자 능력이란 생각이 든다. 또 어떤 장을 펼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연결할지. 기대가 된다.
written by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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